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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서해교전 2주기 추모식에서 故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택씨가 아들을 위한 추념사를 읽으며 오열하고 있다.[연합] |
대구에서 한국과 터키간의 월드컵 3.4위전 경기가 벌어진 2002년 6월29일, 서해 연평도 북쪽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는 북한의 기습 포격을 받은 한국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침몰됐다. 정장 윤용하 소령 등 6명의 해군 장병이 숨지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오늘로 이들 해군 장병이 숨진지 2주기를 맞는다. 그러나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가려 이들을 추모하려는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둔 지난해 5월 워싱턴을 찾은 한국의 정치인과 부시 행정부의 한 고위관계자 사이에 벌어졌다는 일화가 떠돈다.
"지난해 6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여학생 이름을 압니까?"라는 미국 관리의 질문에 한국 정치인은 자신있게 "효순이와 미선이"라고 답했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관계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서해교전에서 죽은 장병들의 이름은요?" 이 정치인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킬수 밖에 없었다. 미국 관리는 "동맹군의 차량 사고에 의해 희생된 학생들의 이름은 기억하면서, 어떻게 적국의 흉탄에 희생된 군인의 이름을 모를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이같은 얘기를 전해들은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방문에 앞서 부시 대통령이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해올까봐 워싱턴에 가면서 서해교전 전사 장병들의 이름을 부리나케 외워갔다는 것이다. 물론 부시는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같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기습적으로 조준사격한 함포에 해군 장병이 희생된 것은 큰 비극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사회는 너무 쉽게 이들을 잊어버리고 있다. "그동안 정부기관에서 편지.전화 한 통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UN군 사령관이 두 차례 편지를 보내왔죠. 미 7함대 사령관인 제임스 메츠 중장과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으로부터도 편지를 받았어요. 제 아들이 누구를 위해, 어느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거죠?" 전사한 황도현 중사의 어머니는 지난해 1주기를 앞두고 이렇게 반문했다. 황 중사의 아버지는 "아버지, 형이 6.25 때 인민군한테 잡혀가 죽었다"며 "아들도 북한군한테 총 맞아 죽고…. 3대 중 나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는 28일 한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월부터 해군 예비역 단체에서 추모제도 하고 시민들도 참석하는 문화행사로 치르자고 했는데 지난 10일 '어렵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말 안 했지만 짐작이 갔다. 다음달 27일 매사추세츠 우스터에서 추모 행사가 있다. 센트럴 매사추세츠 한국전 참전기념탑 건립위원회 회원들이 초청했다. 비행기 티켓까지 보내줬다. 리언 러포트 주한 미군사령관도 오늘(28일) 편지를 보냈다. '당신 남편의 영웅적인 노력과 엄청난 용기를 결코 잊지 않겠다. 그가 민주주의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른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오히려 미국 사람들이 더 기억해 준다. 솔직히 한국이 싫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중사는 침몰한 참수리357정 조타장으로 전투에 참여해 실종됐다가 41일만에 인양된 배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한 중사는 옆구리와 등쪽을 관통하는 총상을 입고도 조타실의 방향타를 끝까지 놓지 않고 있었다.
2주기 추모식은 이날 오전 오전 11시30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 내 서해교전 추모비 앞에서 열린다. 추모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과 종교의식, 노무현 대통령의 메시지(대독), 헌화.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행사에는 문정일 해군참모총장 등 군 관계자와 서해교전 희생자 유족, 당시 격침당한 참수리 357호에 탔던 현역과 예비역 장병 등 150명이 참석한다. 정부의 추모행사는 이것이 전부다.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도호씨는 해군 정장이던 1970년 6월 말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대간첩 작전을 완수해 훈장을 받은 지 꼭 32년 만에 아들을 잃었다. 그는 "정장의 아버지로서 숨진 하사관의 부모들을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며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는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이들을 기억할 것인가.
김창우 기자 <
kcwsssk@joongang.co.kr>
<전사자 명단>
소령 윤영하(해사 50기.당시 28) 참수리 357호 정장
중사 한상국(부사관 155기.29) 조타장.실종 41일만에 발견
중사 조천형(병 402기.부사관 158기.26) 병기사
중사 황도현(부사관 183기.21) 병기사
중사 서후원(부사관 189기.22) 내연사
병장 박동혁(20) 의무병, 다리 부상으로 수술 후 숨져
<부상자 명단(2002년 8월 해군 발표)>
▶중상
이희완 중위(울산 중구/해사54기/'76년생),
조외건 중위(부산 남구/학군46기/'79년생),
곽진성 하사(경북 구미/부178기/'79년생),
조현진 상병(경기 의정부/해상병458기/'82년생)
▶경상
이해영 상사(강원 춘성/부90기/'64년생),
김 현 중사(전남 여수/부132기/'72년생),
황창규 중사(경남 진해/부148기/'74년생),
김장남 중사(전남 진도/부163기/'75년생),
이철규 중사(경남 함양/병402;부169/'76년생),
전창성 하사(서울 금천구/부175기/'77년생),
최우성 병장(서울 영등포/해상병445기/'81년생),
고경락 병장(경기 오산/해상병445기/'81년생),
김승환 병장(경기 안양/해상병452기/'81년생),
김용태 상병(서울 은평구/해상병456기/'82년생),
권기형 상병(경북 의성/해상병457기/'81년생),
김면주 일병(경기 안양/해상병461기/'80년생),
김상영 일병(전남 여수/해상병462기/'82년생),
김택중 일병(전북 정읍/해상병465기,'81년생),
이재영 일병(서울 강동구/해상병463기/'8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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