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방송한다기에 기다렸다 본 프로...
예전에 다큐채널에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미군 유해발굴단의 활약을 그린 것을 보고 우리나라는 왜 없나 했더니 뒤늦게 시작한 유해발굴사업...
아무리 문이 무보다 높은 신분보장을 했던 조선시대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접받지 못하는 참전용사들, 어렵게 사는 유가족들...
무언가 크게 잘못 되었다고 느끼지만 차차 나아지리라 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아직도 많은 수의 전사들의 시신을 찾지 못해 그들의 위패만을 모시고 있다.
이러한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육군 유해발굴단.
현재 전쟁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동두천, 가평 등지에서 유해발굴이 한창이다.
50여년 동안 땅속에 묻힌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아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하는
'육군 유해발굴단'의 땀흘리는 현장을 6.25를 맞이하여
현장르포 제3지대에서 밀착취재 했다.
호국영령의 혼을 찾는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54년!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호국영령을 모신 국립 현충원에는
아직도 그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10만의 전사자들은 위패만 모셔져 있다.
마지막까지 조국과 함께 했지만 그들의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조직된 '육군 유해발굴단'.
16명의 병사와 간부들로 이루어진 발굴단원들은
입대 전, 고고미술학과, 고고학과 등 발굴관련 전공을 했거나,
치·의과대학 출신으로 전문성을 갖춘 대원들이다.
이들은 모두 '선배 전우의 묘는 내가 찾는다'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전투가 치열했던 곳을 돌면서 유해발굴을 실시하고 있다.
치열했던 전투지 vs 유해발굴 현장
1950년 6월 25일 새벽.
무장된 군인들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전쟁 발발 5시간만에 점령됐던 동두천지역.
이 지역은 남으로 넘어오는 관문인 만큼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었다.
지난 6월 초, 동두천 야산일대에는 30여명의 사병들과 발굴단원들은
주민들의 제보를 토대로 발굴작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제보 지역은 커다란 산이었지만, 이들의 발굴 작업은 아주 정교했다.
호미와 모종삽을 이용하여 50년 동안 쌓인 흙들을 걷어내고,
작은 돌과 나무 뿌리도 지나치지 않고, 또한주변의 흙까지 세밀하게 살핀다.
탄피와 탄두만 해도 230여 개가 나온 이곳 현장은 치열했던 전투지 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50년 전 치열했던 이곳 전투현장은 이제 형태조차 알아보기 힘든
유해들이 잠들어 있는 발굴지역이 된 것이다.
반세기만에 귀향
지난 4일, 경기도 가평의 화악산 전투지 발굴현장에서는
20대 건장한 청년의 전신유해가 사진 한 장과 함께 발굴되었다.
반세기 동안 땅속에 묻혔던 전사자의 유해는 나무뿌리에 뒤엉켜 있었지만
빛 바랜 사진은 54년 전 이곳에 묻힌 청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사진으로 인해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그렇게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산야에 묻힌 이름모를 호국영령들을 찾아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동족상잔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육군 유해발굴단'의 발굴현장을
6.25를 맞이하여 현장르포 제3지대에서 밀착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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